[스크랩] 아이를 영어유학에 보내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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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없고 일하기는 싫고 바깥 날씨는 무지하게 좋고. 딴지 들어와서 이것저것 읽다가 나도 뭐 유익한 이야기 쓸 게 없나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써볼게.
영어 잘하는 사람들은 이글 읽는다고 시간 날리지 마. 이 글은 영어로 떠드는 게 안 되는 아이들, 들어도 못 알아듣는 아이들, 중-고-대 10년을 들이 파고도 미국인하고 얘기하며 노는 게 안 되는 사람들, 또는 조기유학 준비하는 아이들이 대상이니까.
난 태평양 변으로 이사 오기 전에 뉴욕에서 과외 선생을 한 10년 했었어. 영어는 나도 못하지만 나보다 더 못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영어 과외 선생질을 할 수 있었지. 아, 미리 알려줄게. 난 전문글쟁이가 아니니까 횡설수설이 될 거야. 하지만 파악된 내 주제를 초월하면서까지 이런 횡설과 수설을 해보려 깔짝거리는 이유는 오랜 세월 눌러 두었던 답답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럼 횡설 첫 번째 부터.
어떤 인간이 현지에 가서 '영어로 산다면 당근 영어가 늘겠지~' 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인간은 분명 매우 용감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어. 그러니까 매우 무식하다는 얘기야. 갓 이민 와서 아이를 중고등학교에 보내기 시작한 이민 가정을 예로 들어볼게.
우선 아이들 입장.
한국서 중2까지 다니다가 여름에 미국에 온 철수. 미국 학년은 여름방학 끝나고 9월에 시작을 해. 미국의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 그러니까 미국식으로 보면 철수는 7학년을 다니다가 온 거야. 아직7학년을 끝내지 못했으니 7학년부터 다녀야 정상이지만, 영어가 문제야.
학교 등록하러 가서 만난 교직원들과 선생들이 뭐라뭐라 샬라쌀라 하는데 이게 한국서 영어 학원 다닐 때 듣던 거 하고 달라. 지가 생각하기로는 좀 한다던 게 영어였는데 철수는 무지 당황하는 거지. 쌸라쌸라가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까. 대답하기 곤란하지. 웟슈어네임은 알겠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냥 샬라샬라.
그래서 1학년을 꿇기로 하고, 6학년부터 시작해. 기초가 튼튼해야 하니까. 영어가 안 되는 이민학생들을 위한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모국어가 아닌 영어) 클래스가 학교마다 있어서 하루 40분씩 철수는 따로 수업을 듣게 돼.
첫날 등교해서 산수시간에 철수는 샥(쇼크 shock)을 먹어. 세상에.
2:3 = 4:?
이런 문제들을 40분 동안 풀고 있는 거야(편집자 주: 이런 비례식은 울나라에선 초딩때 배운다).
첫 과학 수업은 환경오염이란 무얼까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타이틀 빼고는 선생하고 아이들 교과서 읽고 묻고 답하고 하는 바람에 사전을 찾을 새가 없었고, 세계사 시간은 유럽의 역사를 배웠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ESL 클래스.
ESL 선생이 뭘 나눠주는데, 보니까 손바닥만 한 카드에 동물들 그림들이 있네.
옆에 앉은 동양 애한테 뭐냐고 물어보니까 가만 보더니 “아임 차이니스, 맨~” 대답이 돌아와. 지가 중국인이라 하는 거 같은데 맨이라고 날 불렀어. 미국에선 이름 모르면 맨, 우먼 요렇게도 부르는 거야? 선생은 계속 뭐라 하고,다른 아이들은 뭔가 하고 있고, 철수는 선생만 보고 있고. 선생이 다가와서 뭐라고 부드럽게 묻는데 철수는 할 말이 없어. 와 진짜 답답하지.
미국 사회시간은 지도 읽기. 그럭저럭 체육시간을 넘기고 국어시간(영어시간). 국어시간에는 전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대충 분위기 살피다 첫 시간 지나고 드디어 집에 갈 시간. 긴장했던 탓에 좀 피곤하지만 철수는 기분이 좋아.
학교는 어땠니? 엄마가 물어 봤을 때 철수의 대답은 철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명쾌했지. 엄마 나 영어만 잘 하면 전교 1등도 문제없어. 덧붙여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산수가 얼마나 쉬운지, 몇 개 되지도 않는 과목들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지. 철수가 말도 많고 기분도 좋은 걸 보면서 엄마의 얼굴에도 희망의 웃음이 번져.
처음엔 거의 모든 이들이 똑같이 범하는 전철 그대로 철수네 부모들은 이제 드뎌 미국 학교에 들어갔으니 지가 금세 영어도 늘고 재미있게 생활하겠지 하는 찬란한 희망에 차고 철수 또한 영어를 정복하자아! 마음속 함성을 지르며 매일 등교하기를 근 한 달. 그러면서 차츰 철수가 깨달아 가는 게 있어. 우선 하루 40분 듣는 ESL이 실재 수업을 듣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도저히 혼자서는 숙제가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
매일 Global Science 4~5 페이지 읽고 뒤에 7, 8개 본문 내용을 되묻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문장으로 적어가면 되는 숙제는 컴터 사전 찾아가며 읽는데 1시간, 작문하는데 1시간, 단어 공부 따로 할 시간 없음. 한두 개라야, 아니 한 백 개만 되어도 어찌 엄두를 낼 텐데 이건 수 천 개야 수 천 개.
사회숙제도 똑같은 모양이지. 본문을 읽고 내용 되묻거나 의견을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하기, US history같은 판. 국어시간 숙제는 하려고 하다가하다가 결국 포기. 매일 에세이를 적어오라고 하는데 읽기도 벅찬데 무슨 에세이.
그리고 세상에, 독후감이라니? 전자사전 끼고 교과서 읽기도 골을 패는데 문학작품 독후감이라니오? 마마? 지리수업 숙제도 읽고 답하기. 과학 역시. 프로젝트가 뭔 말이냐고. 이건 12시간 투자해도 절대 다 못함. ㅠㅠ 대책이 없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그 쉬운 산수 숙제. 문제 자체는 한국보다 쉬워. 예를 들자면 이런 거. ‘3/4 빼기 1/4’ 근데 이게 숫자가 아니고 말이야 말. 그러니까 문제가 이렇게 생겨먹었어.
A class has 16 students. The 3 fourths of them are boys.
How many boys are left when 1 thirds of the boys is excluded?
(한 학급에 16명의 학생이 있는데 전체의 3/4이 남학생이다)
(학생 전체의 1/3을 제외하면 몇 명이 남나?)
우이씨. 그 쉬운 산수가 망할 놈의 영어 땜에, 뺄까 더할까, 착한 철수도 순간적으로 짜증이 울화로 치밀어 올라.
결국 철수는 다른 한국 아이들을 찾았어. 한인들 많기로 유명한 뉴욕. 역시 6학년에서만 5명의 친구들이 생긴 거야. 동병상련. 영어가 안 되다보니 함께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필요한 거지.
이 친구들을 알고 마음의 위안처가 생긴 후로 곧 철수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지. 이민 와서 학교를 다닌지 3년이 지난 다니엘 김도 영어를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쟤는 분명 영어공부는 안 하고 딴 짓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거야’ 철수의 손쉬운 결론은 우선 그거였어.
약간의 의구심이 있었던 건 마이크 2년, 데이빗 2년, 챨리 1년. 다들 미국생활 선배들인데 영어가 안 된다는 거.머리가 그다지 나쁜 아이들도 아니고, 딴 짓을 한다고 바쁜 것도 아닌데 말이지. 철수는 엄마 아빠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해. 나를 믿고 언제나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는 우리 엄마 아빠.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엄마 아빠는 괜찮은 영어 학원을 수소문해. 철수가 감당할 수 없는 학교 숙제들 때문에 급하게 들어간 방과 후 교실은 다만 철수의 학교 숙제완성(!)을 도와줄 뿐, 영어를 가르쳐주는 학원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두 달 동안 거길 드나들었던 건 이민 초기의 흔한 시행착오에 해당되는 거였어. 이제야말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학원을 간다. 낙관을 가지게 되지. 곧이어 좋은 날들이 올 것이다!
근데, 얼래? 학원은 학원인데 '진학학원'을 다니게 되었어. 물론 영어를 가르쳐. 종류가 문제지. 뭘 가르치냐면, 전문 엣세이반, 헌터/브롱스텍 고등학교 진학 엣세이반. 영어 논술학원이라니ㅠㅠ 아무 것도 배운 것 없이 한 달을 다니다가 진학학원을 그만 두고(진짜 등신 되어 앉아만 있었다는) 철수와 엄마 아빠는 기초영어학원을 찾아 헤맸어.
한인사회 신문이나 찌라시에 드문드문 나는 광고들. 이를테면 '성인영어 가르쳐줌', '시민권 영어 초보부터 기초까지' 문제는 '학생 영어 기초부터 완성까지' 뭐 이딴 게 없다는 거야. '유학생 엣세이 작성 도와 드립니다' 이딴 건 있는데. 이제 갓 이민 와서 학교 다니십니까? 제가 처음부터 책임지고 도와드리겠습니다. 이게 없다는 말. 우이씨,미국에 영어학원이 없다는 게 말이 돼?(한국에는 한국학교 다니는 필리핀학생을 위한 기초한국어학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름. 알려주시길)
철수는 시간이 없어. 무슨 시간? 영어를 따로 공부할 시간.
잠시 내가 보는 철수의 상황은 이래. 철수가 접하는 6학년 교과서와 뉴욕시 추천 도서 54권 필독서들의 수준은 한국에서 유학시험 준비랍시고 하는 TOEFL보다 수준이 훨 높아. 게다가 장문 작문까지. 이게 TOEFL Writing 하고 틀린 건 격이 다른 거야. 논리적이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 한 편의 작품이라는 거. TOEFL은 한 3학년 수준 정도랄까? 아니 3학년인 우리 아들이 매주 60권정도 도서관서 빌려다 읽는 책들 중엔 그보다 훨 까다로운 책들이 많아.
서울 종로 TOEFL 학원에서 종일 지내본 청춘들은 알거야. 입에서 단내 나게 Reading Comprehension, L/C, VOCA 어쩌고 들으면서 하루 종일 영어한답시고 다리 비비 꼬며 지내는 심정을. 근데 철수는 아침 8시부터 3시10분까지 학교 수업 들어야(앉아있어야) 해.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숙제를 해야 하지. 미국서는 숙제 안 해가면 성적 팍팍 깎아. 그니까 하는 척이라도 해야 돼. 남이 한 거 베끼는 거지만서도.
물론 철수의 성적은 개판이고, 선생들은 재껴 놨어 벌써. 선생들 입장에서는 철수가 노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철수의 하루를 보면 이래. 학교 갔다 와서 숙제방에서 해준 숙제 베끼고, 집에 오면 6시가 넘어. 밥 먹고 나면 7시 반. 그 시간이 돼서야 영어를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물론 이론상으로는 공부할 수 있지. 이론상으로는.
근데 영어를 어떻게 공부하지? 성문기본을 달달 외워? 아님 토플 문제를 푸나? 모르는 단어 20개씩 매일 외워나가? 여태껏 그렇게 하고 또 해서 지금 이 모양인데 또 그걸 해? 증말 아닌 거 같다 그건. 무언가를 달리 해야만 하는데 현지에서 학교 다니면서 따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시간은 써머베케이션(여름방학)이야. 근데 좀 전에도 물었지만 다시 하는 질문. 어떻게 공부해? 중-고-대 10년을 해도 ㅆㅂ 안 되는 영어를 두 달 반, 방학 동안에 정복할 수 있는 용빼는 방법이 있긴 한거야?
그럼 이제는 엄마 아빠의 입장.
아니 옆집 살던 순이네는 캐나다 이민 가서 딸아이가 이민 첫 해 부터 전교 1등을 한다고 좋아 죽더니만 우리 철수는 걔보다 공부를 더 잘 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영어를 전혀 못하던 애들도 미국 와서 1~2년 고생하면 다들 영어 잘 한다는데, 우리 아들은?
여기서 횡설수설의 횡 정도 되는 걸음을 멈추고 같이 상상게임 하나 할까?
간단해. 거꾸로 해 보자고. 어떻게? 니가 해 보는 걸로 생각해 보자. 철수보다 훨씬 오래 영어 공부하신 니가 미국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해 봐. 물론 이 글을 읽고 있으니까 넌 영어를(한국 영어시험점수 말고) 유창하게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지. 아침이면 학교 가서 전 과목 수업을 다 들어. 하루 여섯 시간. 그러고 숙제를 하셔. 따로 영어공부하고 싶음 마음 내키는 대로 하셔.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하는 거야. 그렇게 한다고 치고 영어 마스터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 같어? 1년? 아님 2년?
이런 가정은 어떨까? 아프리카 우간다 13살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국 초등학교 6학년에 넣는 거야. 수업 다 듣고,숙제 당연 해 오는 거고, 지가 한국말을 언제 통달하는가 보자는 거지. 우리 대다수처럼 10년이 걸려도 안 될까?아님 일 이 년이면 게임오바 될까?
내 결론은, 정상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럼 가자마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펄 날며 잘하는 인간들은 뭐냐고? 그래그래 사람들이 그걸 모르더라고. 한 600명 정도 가르치다가 보니까 알게 된 게 그거야. 걔네들은 어학적으로 타고 났더라.
너무 허무하게도 그냥 그렇게 타고 난 거더라고. 웬만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은 자식을 걸고 함부로 하면 안돼.공염불쯤 되는. 될거 같으면 젠장 미국 2년, 프랑스 2년, 러시아 2년, 중국 2년 학교 보내서 5개 국어에 능통한 아들, 딸을 만들면 되잖아? 먹고 사는 거 걱정 없을 걸. 정말 환상적이지 않아? 5개 국어 동시통역의 귀재. 쨘!
정상인의 언어 습득 능력이란 게 시기가 있다는 말 어디서 들어본 적 없니? 한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의 아이가 가진 언어습득능력은 성인에 비해 초능력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라는 거.
언어교육의 '결정적 시기'
열 살 넘어가면 스무 살짜리하고 별 차이가 없어. 타고 나지 않았고, 십년을 해도 안 되던 영어가 필리핀, 미국, 캐나다로 위치이동을 했다 해서 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철수 이야기로 돌아가서 대개 철수 같은 아이들이 겪는 과정은 다음과 같아. 처음에는 벽으로 느껴져서 부수고(또는 문을 열고)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영어가 점점 커지고 높아져서 산처럼 변해. 괴물 같은 어쩔 수 없는 산. 그리고 자존심을 다쳐. 부모에게는 실망스런 아들, 자신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질책, 학교에서는 저능아, 공부는 정말로 글쎄요 하는 신세. 계속 하다가 보면 다 들리는 것 같고, 다 이해되는 것 같은데 막상 문제를 풀게 되면 아무 것도 명확히 읽히고 아는 것이 없다는 결과의 반복. 온 사방이 뽀얗게 보이는 듯하지만 어느 것 하나 선명하지 못한 그런 상태가 계속 되는 거야. 정신건강에 치명적이지.
그리고 요즘 미국에선 주 학력평가(State test)라는 걸 매년 쳐서 통과를 해야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 초등 4학년부터. 통과 못하면? 낙제지 뭐. 그러니까 낙제라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철수의 자긍심은 박살이 나는 거야. 두 번 낙제하면? 후배들한테 쪽팔려서 학교 못 가. 학교 옮기고, 어짜고 저짜고 우여곡절 끝에 졸업장 못 쥐면 군대 가는 거지 뭐. 한국서 멀쩡하던 애 하나 병신쪼다 만들기가 너무나 쉬운 일이 되는 거지. 진짜 멀쩡하던 이쁜 아들딸 등신껍데기 만드는 이 미필적 고의는 부모들까지 나락으로 끌고 들어가서 부셔버려.
처음에는 그래도 나아지겠거니 하다가 일 년, 이 년 가게 되면 어느 순간, 그러니까 여느 때처럼 쌸라~대는 교실에서의 버티기를 하고 있던 어느 순간 호흡이 가빠지고 현기증이 나면서 진땀이 나고. 도저히 그 자리에 순한 양처럼 앉아있을 수 없는 순간이 아이들에게 찾아 와(이건 실재로 내가 몇 아이들에게서 들었던 고백이야).
아이가 도서관에 혼자 앉아있든, 학교 밖으로 나가 버리든 학교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아. 혹시 있을 수 있는 친한 친구 외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거야. 한국 같으면 교실에서 학생 하나가 없어졌다 그러면 선생이 알고 담임이 알고 묻고 찾고 전화하고 하겠지. 근데 말야 미국 중고등학교에는 담임이 없어. 한국 대학 생각하면 되겠다. 선생이 들어와서 출석 체크 하고, 수업 끝나면 출석사무실(attendance office라고 해)에 자료를 넘길 뿐이야.
사무실 직원은 수업 무단결석한 아이와 아무런 안면이 없지. 컴터가 처리해. 자동으로 댁의 자녀 누구가 ‘몇 월 몇 일 어느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인쇄해서 부쳐. 근데 대개의 한인 가정에서 우편함 열쇠는 그나마 영어를 하는 아이들이 쥐고 있다는 거. 대개 아이가 이 단계에 이르러 무단 결강에서 무단결석을 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어져. 내가 겪었던 걸로는 대개 반년에서 일 년이 걸리더라. 부모가 이걸 아는데 까지가.
무단결강(class cut)이나 무단결석(부모의 정당한사유서가 없는 결석)을 시작하면 다음 수업에 들어가는 게 더 힘들어져. 우선 숙제 못했지. 수업 내용 더 모르지. 한두 번 하다보면 선생한테 제대로 찍혀서 앉아있는 게 더욱더 곤욕이 되는 거고. 지금 내 어림짐작으로 뉴욕의 이민가정 고등학교 졸업률은 최대로 잡아서 60퍼센트 정도. 어쩜40퍼센트 정도 봐야 할까?
거짓말이었음 참 좋겠다. 이역만리 살아보겠다고 와서 자식 잘 되는 모습 한 번 보는 게 그나마 삶의 희망인데 돈이 없음 더더욱 방법이 없는 자본주의의 천국. 일대 일로 영어 가르치는 영어 독선생 하나 둘라치면 월에 1000불(주 3일 두 시간 정도)이 힘을 못 쓰니. 그 꼴난 숙제방도 한 달에 400에서 500, 여름캠프 한 번 보내려 해도 2, 3000불이 돈이 아니니(근데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건지).
그래 맞아. 미국 대학 입시 미국 전국 수석을 하는 이민자 2세 한국아이도 있고, 한국의 자랑이여 하는 애들도 물론 있어. 근데 그게 말이야 걔네들은 타고난 거야 그냥. 이쁜 여자애가 남보다 어릴 때부터 하루 여덟 시간씩 미용체조를 해서 예쁜 건 아니잖아? 어려서 예뻐지려고 인상도 안 쓰고 매일 화장에 피부영양제에 마사지 받아서 그런 게 아니잖아? 걔네들은 그냥 그렇게 타고 난 거고, 공부 잘하는 애들도 거의 다는 타고 난 거처럼.
...너무 오래 떠들었네. 그래도 오늘 하루는 떠든다고 시간이 잘 갔어. 딴지가 고맙네. 그럼 마무리해야지.
나는 이제 가르치는 거 포기하고 기계를 뜯어먹으면서 살고 있지만 당연히 방법이야 있지. 영어교육 방법. 한국의 영어교육 방법은 갈아엎어야 돼. 요새는 다르다고? 미안하지만 그런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칠 수 밖에 없어.
서울에 내 조카들이 중3, 고 2야. 초등부터 영어 학원 다녔어. 그 신식이라는 영어교육을 받았다고. 둘 다 학교에서 톱을 달리고. 특목고도 가고. 근데 어이없게도 나와 내 아들이 영어로 뭐라고 말할라치면 못 알아들어. 그리고 영어로 대꾸도 못해. 한국어로 알아 들었나 확인해보면 역시 몰라.
한국 영어 교육을 갈아엎는 방법은 한편 간단한데 그건 나중에 한 번 얘기할게. 당장엔 멋모르고 부모 따라 왔거나 부모가 보내서 미국에 와버린 보통의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영어의 정복자로 만들 수가 있느냐가 다음편 될거야. 그래야 횡설수설이라도 횡 다음에 설 차례가 맞을 거 같어.
그리고 다음에 쓰게 되면 어학연수 한답시고 와서 몇 년을 어학원 다니면서 영어가 안 되는 관계로 대학 본과에도 못 들어가고 허송세월하는 젊은 애들한테도 쬐금 도움이 되도록 써보려고 그래(그니까 여기 와있는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우선 얘기할래).
나도 이제 퇴근해야 돼서 이만. 그래도 읽은 이는 조기유학 운운하는 인간 있음 부디 말려줘라. 어학적으로 타고난 아이들 있는 집들만 빼고. 이렇게 언놈이 그러는데 어학연수 보내는 게 무지 잘못하는 거라고.
취업이 어려우면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는 거, 하나의 대안이 될 걸로 봐 나는. 또는 이민 역시. 근데 아파트 팔아서 와도 완전무장 없이는 개털되는 게 다반사를 넘더라. 완전무장이란 영어와 인내심을 말해. 가진 돈은 일단 없는 걸로 치고, 싼 아파트 얻고, 남의 집 살이 일 년은 무조건이지. 그러니까 돈이 먼저가 아니란 말.
혼자 살라고 오는 게 아니고 가족, 특히 자녀들을 위해서 오는 거라면 너는 아니더래도 자녀들은 영어를 할 수 있게 해서 와야만 하고, 일자리 찾아오는 너라면 너 역시 영어를 할 수 있게 해서 와야만 해. '어학연수 보내지 마세요~' 요런 말을 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한 게 아니야. 내가 하고픈 말은 '제대로 준비하고 제대로 알고 보내든지 오세요' 이런 말이라고.
그런데 횡설수설을 하더라도 말이 씨가 먹힐라믄 일단 근거가 있어야 되겠더라구. 그래서 일단 반응도 볼 겸, 어학연수 만만한 거 아니다 니들. 요렇게 일단 끄적여 본거야. 사실 이 내용은 내가 뉴욕서 잠시 쉴 때 혼자서 주간 잡지랍시고 만들어 돌린 적이 있었는데 첫 간행물에 '철수의 이야기'라고 해서 적어봤던 내용이야. 먹고 산다고 금새 때려 쳤지만 교민들한테서 전화도 오고 그랬었다. 고민상담하자고.
근데 그때는 딱 답답한 이야기만 하다가 스탑했어. 혼자서 몇 놈 갈쳐봐야 뭔 대안이 되겠냐 싶더라고. 그리고 돈이 안 되더라. 여기서도 재벌집 아이들은 저렇게 쩔쩔 맬 일이 없더라고. 좀 사는 집 아이들은 어쩌면 해당이 안 될 수도 있는 게 내 영어이야기야.
맨해튼 유명한 비쥬어아트 대학원 다니던 학생 하나가 예전에 그러더라. 수업 마치고 카페테리아에 모이면, 맨 먼저 하는 얘기가 “야 오늘 과제물 아는 사람!” 이라고. 이러면서도 대학원을 세군데 째 다니는 청년도 봤다. 한국에서 교수자리 그럴 듯한 거 날 때까지 놀고 있는 거라더라. 얘네들은 영어 안 해도 돼.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진짜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하고, 자식들에게 만큼은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하겠다는 부모들이야. 또는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픈 젊은이들이 되겠지.
아무도 않 하니까 내가 적는 것들이 씨앗이 되길 바래. 한국을 떠나서도 외국 한국인(이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나까지도)들의 밥이 되지 않기를 바라니까. 그니까 날 좀 도와줘. 이제부터 시간 날 때마다 영어공부 방법이랍시고 횡설수설하려고 하는데, 나보다 더 나은 너희들도 좀 같이 해보자는 얘기야. 오케이?
그럼 나 컴터 뜯어 먹어야 하니까 나중에 봐. 즐거운 주말 - 평온, 화사한 햇살, 좋은 가족, 살가운 애인, 맛난 간식, 뭐 이런 것들 하고 – 지내.
빠이빠이
피에쓰: 다음에 쓸라고 하는 건 영어 알파벳하고 음절이야기야. 어떻게들 생각해?
이번 글's 주의사항: 철수 공부하는 거 옆에서 보는 거야. 무지 졸립고 재미 없어. 미국 사는 얘기 없는 거는 미안. 영어 못 해서 당장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나 관심 둘 야그니까 읽고 나서 투덜거리기 없기.
1.
철수가 미국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지났어. 그래도 근면성실하고 착한 철수의 노력으로 낙제는 없었어. 키도 많이 커서 5피트 8인치(약 172.72cm)나 돼. '워럽 듀우' 영어인사도 하고 찝적거리는 넘들에겐 '아임고나크뤡열팍킹헤드' 욕도 해. 길 가다가 스페어쿼럴바디 홈리스가 종이컵 내밀면 '아이돈헤브이븐마이팍킹개스' 이런 말도 배워서 쓰고.
운전면허? 없지 당근. 그냥 멋있어서 따라하는 거지 뭐.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을 다니는 한국 아이들이래도 네이티브 쪽인 영어를 하는 쪽과 영어를 못하는 그룹으로 자연스레 그룹이 나뉘는데 여전히 철수는 콩글리시 그룹이고.
작년에 아빠가 큰 아빠의 도움을 얻어 시작했던 봉제공장이 망했어. 쥬위시(Jewish) 회사에서 일감을 받는 하청을 했는데 큰 일감 주고 물건 가져가고 결제는 아주 조금만 해 주고. 아빠가 빚까지 얻어서 꾸려왔는데 그렇게 몇 번 하다가 쥬위시들이 쌩까 버리니까 날라간 거야.
미국에서 성공! 철수 교육과 풍요로운 미래를 동시에!
아빠의 꿈이 쓰러져버렸어 너무너무 쉽게. 살림하던 엄마는 손톱 가게 초보로 일을 시작하셨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쥬니어 하이스쿨(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 편집부 주)도 끝이 보이고 다가오는 여름방학이 끝나면 철수도 하이스쿨 프레시먼이(미국 중등 교육 체계의 9학년 - 편집부 주) 돼. 참 막막한 봄날이 철수 가족 어깨 너머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어.
2. 공짜 과외
아빠 아는 분의 소개로 일요일날 아침에 두 시간 과외를 받게 됐어. 뉴욕직업학교에서 뭘 가르친다던가 하는 공짜 과외 샘.
샘이 말했어.
안녕, 넌 누구냐?
정철수입니다.
철수가 말했어.
응 철수... 너는 지금 여기 왜 와 있는 거야?
아빠가 찾아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
철수야, 사는 게 재밌니?
.재미... 없는 거 같은데요.
'재미 없어요'라고 안 하고 '없는 거 같아요' 요렇게 말하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
... 없는데요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웬만하면 '있어요', '없어요' 이렇게 말해 줄래?
......
철수는 공부를 잘하고 싶어한다며?
(끄떡끄떡)
그럼 공부를 얼마나 잘하고 싶은데?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에이 그럴 리가. 아마 생각했던 걸 잊어버린 걸 꺼야. 엄마한테 전교 1등 할 거라고 했다면서? 오케이. 공 부를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거지?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왜 마음은 있는데 못하고 있 는 건데?
잘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너 공부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럼 자부심을 가져도 돼. 넌 공부 쪽으로는 확실히 똑똑한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거든요.
오케이. 자 지금 얘기하는 김에 너 생각 좀 해 봐라. 너 성적 팍팍 올릴라면 필요한 게 뭐야?
영어를 배워야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일단 영어부터 마스터하고 또 다른 필요한 걸 생각하면 되겠네.
저... 영어 선생님이세요?
나? 아냐. 그냥 쪼금만 갈쳐 줄 거야. 내가 아는 데까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 하 하. 철수야 너 징검다리 알지? 이제부터 내가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고 넌 건너는 사람하는 거야. 니가 나 를 딛고 시냇물을 건너는 거지. 건너고 나면 그 담엔 니 앞으로 큰 강이 나올 거야. 그 큰 강을 건너는 다리 는 니가 직접 만들어 건너.
3. 첫 영어 수업
샘의 첫 수업은 간단했다.
첫째, 영어를 십 년 해서 마스터하겠다는 헛꿈을 깨라. 내가 반 년을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설정하고 거기까지 가서 늘어난 실력을 깔고 앉아서 다음 반 년의 목표를 정해라. 그 때의 너는 지금의 너가 아니므로. 목표는 니가 필요한 만큼으로 잡아라. 지금 너는 교과서 시험지 또렷이 읽고 선생 수업 또렷이 듣고 시험지에 단답형으로 알아먹게 쓸 수 있음 된다. 말은 잘 못해도 된다. 상대가 열 마디 하는 거 알아만 들으면 '예스, 노 땡스'만으로도 발등의 불은 다 꺼지니까.
그니까 지금 니가 못해서 답답한 거, 절박하게 필요한데 너한테 없는 '영어'만 조지라는 거였다. 당장은 네이티브 영어 수준 같은 말은 잊어 버려라. 최소한 앞으로의 반 년 동안에는.
그래서 첫 과제가 앞으로 반년 후의 목표 영어 수준 설정. 그리고 철수에게 샘은 제대로 읽고 쓰기 9학년 수준, 말하기는 4살, 듣기는 8살로 하자고 목표를 정해 줬어. 두 달 반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당장 성적이 나와야 되니까.
두 번째가 현재 수준파악. 이걸 샘은 항상 해야 하는 주제파악이라고 하셨다. 주제파악 테스트는 샘이 묻고 철수가 답하고의 반복. 그러다가 파악되는 게 있음 그거 같이 공부하기. 철수야 에이, 비, 씨, 디 한 번 쭈욱 해 봐. 천천히.
- &^%%^^*()%$#&*(-________-)$%^^$
철수 발음이 개판이라고 샘이 알파벳을 갈쳐줬어(영어이야기 2를 읽어보든가).
미국 와서 진짜 오랜만에 철수는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어. 정말 간만에 뭘 하나 제대로 배웠다는 느낌. ESL 미국 할머니 따라 하는 거 하고는 확연히 다른.
'아... 영어를 한국말로도 배울 수 있는 거구나'
'이런 거였어? 이렇게 첨부터 엉망이니까 아무 것도 안 된 거야'
샘이 했던 말이 하나 또 있어.
모르는 건 그냥 알아버리면 된다. 영어는 못 하는 게 아니고 모르는 거다.
3. 두 번째 영어 수업
알파벳 제대로 만들어 오기 숙제를 샘이 테스트했어. 결과는 합겨~억!
철수 너 임마 너 같은 녀석은 첨 본다. 어떻게 그렇게 개판이던 발음을 1주일 만에 고칠 수가 있었어? 나 도 이십 년이 걸려서 겨우 깨달은 것을... 흑흑흑
샘이 대견해 하고 나름 억울해하기까지 해 주니까 철수는 오늘도 기분이 무지 좋아. 그러고보니까 기분이 좋았던 날이 거의 없었어 미국에 온 후론. 내성적인 철수가 같은 연립에 사는 7학년 동생에게 알파벳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건 새로운 경험이었어. 쪽 팔린 건 처음 잠시였고, 한 번 시작하니까 평소 학교에서 말 한 마디 변변히 안 나눴던 친구들에게도 부탁을 하게 되대. 지난 1주일, 철수는 알파벳에 미친 넘이 되어 버렸던 거였어. 완전 영어 거지 철수.
너 apple 한 번 해 봐. 나 apple 해 볼테니까 니가 들어 봐. 내가 abcd 알파벳 해볼 테니까 듣고 이상하면 고쳐줘 봐.
미국에서 숨만 쉬는 횟집 수족관 속 광어가 아니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사는 멋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마도 철수의 마음은 그렇게 고함을 치기도 했을 거야.
"철수 니가 미국 살면서 아마 조금 화가 나있었던 거 같다"고 하면서 샘은 철수의 노력을 성취하는 사람만이 가진 용기라고 말했어. 그니까 철수는 멋진 남자에 속하는 거라고.
그리고 다시 주제파악 시간. 니 주제를 알라. 그리고 그걸 넘어서라. 샘이 칠판에 적고 시작하는.
자, 아주 어려운 질문. 한국말로 짜장면이 몇 자냐?
세 글자 같은데요.
어이, 철수. 너 그 '같은데요' 표현 웬만하면 관 둬라. 쓸 데만 쓰도록. 확신이 없으면 그냥 '~라고 생각합 니다' 요렇게. 다시, 그럼 책상은?
두 글자요... 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글자 단위로 음절 갯수가 나와. 아버지 하면 세 음절, 엄마 하면 두 음절. 거의 예외가 없어. 오케 이? 역시 센스가 있어서 바로 알아듣네. 근데 영어는 좀 달러. 자 문제 나간다. desk는 몇 음절?
데... 스...크... 세 음절요.
그럼 student는?
스... 투... 던... 트... 네 음절요
야, 너, 음절이 영어로 뭔지는 아니?
씰러블(syllable)요.
오케이. 오늘은 요거해야 되겠네. 씰러블. 철수야 씰러블이 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혹시 아니? 일 본사람들이 우리 김치를 기므치라고 한다는 거 알지? 김치는 2음절인데 3음절로 늘려서 말하고 있지. 그 니까 우리가 영어음절을 지멋대로 늘려서 말을 하면 학교는 하그교, 옥상을 오그상, 혹은 오그사으, 책상 을 채그사으, 컴퓨터를 커므퓨터, 식당을 시그다으, 아침을 아치므, 안경을 아느겨으... 이 정도 되면 못 알아듣겠지? 그니까 알파벳 발음하고 음절을 제대로 해야 등신구제가 돼. 알파벳이 산수에서 낱낱의 숫자 들이라면 음절에 대한 이해와 연습은 덧셈 쯤 되는 기초이자 반드시 마스터해야 하는 먹기 쉬운 떡이 야. 왜냐? 알고 나면 날름날름 보이는 단어마다 맛나게 먹어치우게 되거든.
샘은 철수에게 오른손을 가슴에 꽉 밀착시키라고 시켰어. 그리고 '엄마'를 해 보래. 가슴이 몇 번 울리나 보라고. 가슴은 두 번 울리대. 샘이 그래서 2음절이래. '바보' 해 보래, 또 두 번 울리는 가슴. 알파벳 '에이취(H)'를 해 보래. 요건 한 번 울렸어. 그래도 미국 짠밥이 있는데 당연하지. 앞의 '에이'는 한 번 가슴이 울리고, '취'는 입끝에서만 소리가 나서 가슴이 울리지 않아. 한 번 울렸으니까 1음절. 그리고 한글로 '데스크' 하니까 세 번이 울리네. 샘이 가슴에 손 얹고 시범을 해 보여 영어로는 한 번에 '데ㅅㅋ', 1음절이라고. 그러고보니까 뒤의 'ㅅㅋ(스크)'는 귓속말 할 때 그 소리구나. 가슴이 울리지 않는. 알고서 해 보니까 너무 싱겁게 쉬운 1음절 '데ㅅㅋ'
재미있어 하는 철수.
'와... 내가 영어만 했다하면 '왇? 왇?' 거리던 인간들이 내가 미워서 그러던 게 아니었구나'
도니엄는사라므을개터르이라고부른다
돈이 없는 사람을 개털이라고 부른다
'으잉? 내가 저러고 있었어? 씰러블을 마스터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다'
철수 머리에 앤돌핀이 마구 돌기 시작해.
student도 'ㅅ튜던ㅌ' 요렇게 2음절이 되고, 'disk, risk, ski, box, stew, stove' 다 1음절. 음절을 정확히 발 음하면 미국 거지 깽깽이건 교수건 누구건 무조건 니 말을 또렷이 알아들어 철수야. 그리고 니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단어는 미국넘(이나 여성분)이 지가 아무리 빠르게, 아님 입에 빵을 물고 얘기를 해도 니 귀 에 들려. 또렷이 알아듣는다는 얘기지. 왜? 니가 아는 단어니까. 그러니까 니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단어 는 니가 듣는 입장에서 누가 말하면 당연히 깨끗하게 들린다. 그게 살아있는 단어란 거야 알간?
그리고 샘이 이런 말도 했어
철수야 씰러블 마스터하기 싫어질 때 내 말 기억해라. 누가 너 부를 때 '처르수야 처르수야' 그러면 좋게 싫게?
그 주의 숙제는 Youtube에서 syllable tutorial for kids 검색해서 비디오 30개 보고 따라하기(더 보는 건 니 맘이라고 샘은 그랬지), 다시 만나기까지 1주일 동안 영어 쓸 때 단어마다 신경써서 몇 음절인지를 고민할 것 두 가지였어. 물론 고민은 그 단어를 크게 소리내서 말하는 거 포함.
4. 세 번째 영어 수업
샘 왈,
읽어 보세요. butter
(r 발음 신경 쓰면서) 버...털
철수야 디스이즈낫브리튼, 디스이즈어메리카 엔드 틀렸어~ 다시 해 봐.
(역시... 하면서), (혀 꼬부리고) 버럴!
오케이 오늘 주제파악은 여기서 스탑하고, 단어 읽기 공부를 하기로 하자. 철수 너 영한사전 보면 발음기 호 있지? butter 찾아 봐, 지금... 그렇지, 어떻게 돼 있어? butter [bΛt?r] 이렇게 돼 있네. 철수 너는 이걸 읽을 줄 알면서도 말할 때는 '버털'이라고 해 근데 '버털'이 아니고 '벝얼'이라고 읽어야 돼. 'ㅌ'이 뒤에 있 는 'ㅓ'에 붙어서 '터'가 되는 게 아니고 앞에 발음 밑에 받침으로 들어가는 거야 유갓읻? '벝얼'이라고, 오 케이? '벝얼', '벋얼', 빠르게 하면 '버럴'로 들리지. 근데 이 단어만 빼서 네이티브한테 천천히 정확히 시켜 보면 '벋얼'로 말해. 그리고 그이들 귀에는 '벋얼'이 다 들리는 거고. 우린 음절 단위 체계라서 잘 안 들 려. better도 꼭 같아 '벹얼', '벧얼', '베럴'로 들리는 거야. 그리고 사실은 '벧얼'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 고. battlefield 할 때 '배를'도 같은 거고. 그리고 그 단어가 몇 음절인지를 모르면 강세를 제대로 못 줘. 샘 이 강조하고 싶은 건 알파벳 되고 발음기호 제대로 발음하면 무서운 게 없어진다는 거야. 우리 철수가 알 아들었길 바래.
참 너무 당연한 거 같고 쉬운 말들인데 나는 왜 몰랐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철수의 생각 위로 여름이 오고 있었어. 여름방학이구나.
부모님들이여, 여름방학을 절대 그냥 보내지 마시라 - 샘의 당부
공짜 과외샘의 입장
철수에겐 지금, 딱 10주. 그니까 두 달 반의 시간이 있어.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하루 온종일을 잘 못 알아먹는 수업 받고 숙제하면서 일 년을 박박 기며 살아야 해. 시간만 충분하다면 뭔들 못할까. 갓 태어난 아기처럼 엄마가 하루에 100번씩 엄마를 말해주고 약 5만 번에서 7만 번 엄마라는 말을 들은 애기가 기적처럼 엄마를 따라하게 되듯이 영어를 영어로 배울 수도 있겠다만 철수는 시간이 없어. 두 달 반이라는 시간 안에 우선 철수의 무너져내린 자긍심을 회복시켜야 해. 자신감과 긍지. 친절하게, 재미있게 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늘어놓으면 그걸 하나하나 자기 껄로 만들면서 철수는 펄펄 날 수 있는 녀석이고, 내 경험상 올해가 지날 때 철수는 ESL에서 나올 거야.
내가 믿는 건,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철수가 지 머리속에 암기하고 있는 영어들이야. 최소 5000개 이상 되는 영어 단어들과 지가 읽어온 문장들이 철수에겐 지금 개량해서 사용가능한 탄환과 수류탄들이야. 외국어를 보고 뜻을 안다는 것은 지난한 노력과 시간을 요해. 그걸 철수는 이미 어느 정도 해왔고. 그니까 철수의 영어공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용가능하게 바꾸는 작업이 될 거야. 뭔가 하나를 일정기간 노력했으면 뭔가 그만큼이 쌓여 있는 거지 그지? 해 본 넘과 아예 안 해 본 넘은 다른 거야.
십 수 년을 하고도 영어가 안 된다고 하는 너희들도 힘내. 그 긴 세월동안 입에 단내 나게 한 니들 영어공부가 허사는 아니여. 설마 도로겠냐. 담배를 예로 들자면 니들은 니들 등짝에 담배 보루를 빡스때기로 매고 있는 거여. 라이터가 없어서 피우지를 못할 뿐(영어 못하는 니들이 '불'필요한 넘들이라고 하는 거 아니야. 흐.. 썰렁했나?).
사실 난 한글로 영어 가르치는 방법만 쬐메 알어.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법은 몰러. 철수의 현상황에선 한국어를 못하는 영어선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왜? 철수가 알아듣게 납득이 가게 설명을 못하잖어. 철수는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전에 맨하탄 음대 들어가서 고생하던 학생 하나는 피아노 수업시간에 교수가 그 부분은 요렇게 하라고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계속 어버버하면서 피아노를 쳤는데 교수가 그 학생이 개긴다고 생각을 해서 낙제를 시키더라.
잠깐 잡담 하나만 할게. ESL 유학인가 뭔가 하는 거에 대해선데, ESL란 게 원래 이민 와서 2, 30년이 지나도 영어를 배우지 않는 주로 남미 이민자들에 대한 자국민 동화정책으로 시작된 거거든. 할매 할배들 오셔서 영어공부란 거 함 해보셔들. 이게 에이고 저게 비여... 그니까 지금도 ESL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맥도날드 가서 커피 샌드위치 영어로 주문하고 간단한 의사표현을 영어로 하는 정도라고 봐야 해. 철수에게도 할 얘기지만 뉴욕에 Queens College ESL이라고 있어. Queens College 안에 있는 건데 대학이 아니고 어학교습학원이야. 여기서 영어 버벅거리는 아이들을 꼬실 때 하는 소리가 '토플 성적 없이도 우리 ESL 코스만 다 통과하면 대학 본과 입학이 가능하지롱'이야.
이게 한 3년 돈 처들이면서 다니라는 건데. 가능은 하지 물론 즈그말대로. 허지만 대학 본과 입학 허가 받고 나면 입학 전 여름방학 때 대학 배치고사가 기다리고 있어. 영어, 수학 두 개 보는데 이게 ESL 영어테스트가 아니라는데 함정이 있지. 독해하고 에세이 두 개. 토플 점수도 제대로 안 나오는 넘이 뭔 재주로 배치고사를 통과하냐. 걍 대학본과 ESL 직행이지(또 ESL이야 알간?).
혹시나 통과를 하는 불상사가 나면 바로 본과 영어수업 받게 되는 곤경에 처하게 되지 졸업 필수학점 이수과목을 첫판부터 F로 시작하믄 안 되잖어~ 것도 이제는 'ESL 다 끝나면 본과 넣어주께'가 아냐. 시험 다시 봐서 본과 ESL 못 벗어나면 본과 졸업필수 과목들 수강이 안 돼.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아냐. 세 번 기회 준다. 그럼 어쩌라고? 1년 정도 ESL 하다가 관두는 거지 뭐. 졸업도 못하면서 평생 교양과목 학점만 쌓고 있을 순 없잔여. 거기다 유학생 학비가 그 지역 거주 학생 학비의 4배야 4배. 퀸즈 칼리지의 경우 뉴욕주 거주 학생이 1학점당 260불을 내. 타 주 유학생은 1학점 당 535불. 외국유학생은 대강 얼마? 졸업하는 데 120학점 필요하니까. 그럼 일 년에 30학점, 한 학기에 15학점, 15 곱하기 1000은,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어렵네. 읽고 있는 니들이 계산해 보고 생각을 해봐라. 중요 과목들은 수강도 못하면서 저런 거금을 처들이면서 학교 다녀야하는 건지 아닌지.
댓글에 답도 좀 써주고(계산 진짜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하야). 혹시 시간이 남아도는 인간은
가서 보든가 말든가...
→ qc.cuny.edu/admissions/bursar/pages/qctuitioncosts.aspx
혹시 사연 많은 미국 유학을 했다면서 시카고 대학, 컬럼비아 대학, 브룩클린 칼리지 우짜고 하면서 이름이 훌륭한 대학 몇 군데 다니다가 귀국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충 위의 과정을 몇 바퀴 돈 걸로 보면 될 꺼야.
그리고 본과 영어 수업 얘기. 미국서 최소한 대학학력고사를 쳐서 영어를 백점 만점에 60점 이상 받았다는 얘기는 한국에서 국어 과목을 한 75점 맞은 걸로 보면 돼. 국어에 간단한 문장만 나오디? 시, 소설, 수필, 희곡, 고문, 논설... 마구 나오지? 그리고 다 한국말인데 다들 90점 이상 받어? 아니잖아?
여기 대입시험 SAT가 수준이 토플 곱하기 5에서 10쯤 되걸랑 물론 개개인이 느끼는 바가 다르니까 곱하기 5에서 곱하기 10으로 했어. 그 시험을 일정 수준 이상 받아야 가는 데가 대학이잖어. 간단히 말해서 '요정도는 되어야 수업을 따라올 수 있어요' 뭐 그런 얘기 아니겠어? 실력이 안 되면서 본과 수업 듣는 건 그니까 고문이 되는 거야. 그럼 토플만 치고 유학 가서도 본과 수업 잘 버티는 유학생들은 뭐냐고? 어학 쪽으로 타고난 바탕 위에서 엄청나게 하는 거지 뭐 못 알아들으면 몽땅 미리 읽어가고 그러고도 모르겠으면 또 읽어야 되고 영어권 넘들 다섯 시간 걸리는 과제 이틀 밤샘하고도 다 못 해서 코피 쏟고, 얘네들 두 시간 동안 읽을 거 열 시간 걸려 읽고. 꿋꿋하게 버텨내고 기어이 졸업하는 유학생들은 정말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없는 형편에 와서 그 개고생 다하며 힘들게 공부하고도 돈 없고 빽 없으면 돌아가서 시간 강사도 못하더라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학와서 졸업장 제대로 받는 사람들은 정말 성실하고 의지가 있는 인물들이야. 형편이 천정을 밀어 찢어지게 좋은 것들은... 모르겄다 내 아는 바가 없으므로 노커멘이야.
본론으로 돌아와서리, 그니까 철수가 지금 목표로 하는 수준은 절대 네버 에버 ESL 수준이 아닌 거야. 하이스쿨 무사졸업? 것도 절대 안 되는 말씀. 나 철수 대학 가서 개고생하는 거 보고 싶지 않어. 한인이민가정 고등학교 졸업률이 끽해야 40프로라고 했었지? 그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가 대학을 가고, 그 대학을 간 50퍼센트에서 20퍼센트만이 정상 졸업을 해. 100명 고등학생 중 40명이 졸업을 하고, 그 중에 20명이 대학을 가고 그 중에 4 명이 대학을 졸업한다는 얘기야.
미국 평균이, 전체인구 중 약 20퍼센트가 2년제 포함 대학을 졸업하고 있어. 그니까 이민가정 자녀들의 학업성취율은 흑인들보다도 못해(흑인비하하려는 거 아니다. 학업성취율 야그야).
철수는 ESL 탈출을 시작으로 학교 공부 잘 하다가 대학 본과로 바로 가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해. 철수 엄마 아빠 등골 휘는 거 막기 위해서도, 철수가 인생을 허비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도. 물론 좋은 대학을 갈 수는 없어. 너무 준비할 시간이 짧아서 그래. 허지만 일단 뉴욕 시립대 2년제 입학을 하고 일 년 학점만 잘 내면 장학금 받으면서 짱짱한 4년제 편입은 매우 가능성이 높아. 보석 같은 넘인데 자칫 진흙에 묻힐 뻔 했던 철수가 신명나게 사는 세상이 난 보고 싶으.
여하튼 이제 며칠 뒤면 철수의 여름방학이 시작해. 철수의 인생에 있어서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
철수하고 뭐하고 놀 꺼냐고? 알파벳 했지? 글구 씰러블 했지? 영한사전 발음기호 보고 발음하는 공부 했지? 이제 단어는 제대로 읽을 줄 알겠네? 그럼 이제 철수는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것부터 할 꺼야. 에잉? 말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앞에 사전 펼쳐놓고 한참을 읽어도 모르는 넘이 쌸라쌸라 말을 하면 그건 알아듣는다고라? 무신 그런 심한 농담을. 읽어도 모르는 넘은 들어도 몰러. 니는 아니라고 우겨도 나는 그리 생각하는 바니까니 철수는 싫어도 읽기부터 할 꺼란 게 내맘이야.
편안하고 넉넉한 저녁들 되기 바래. 즐거우면 더 좋고. 커피 한 잔 마셔야것다.
쏘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