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어슐러 르 귄
세계 100대 기업, 세계 4대 성인, 한국 10대 인기팝송 등등, 사람들은 순위를 정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것은 영미문학계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3대 판타지 소설이 있으니 말이다.
그 3대 소설은 영화로도 개봉되고 잘 알려진 <반지이야기, The Lord of the Rings : J.R.R.톨킨>,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 : C.S.루이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하는 작가인 어슐러 르귄의 <어스시 연대기, Earthsea Cycle>이다. (참고로 어슐러 르귄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작품이 제대로 영상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2006년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어스시 1편의 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지못미...)
어슐러 르귄은 한마디로 (엔하위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판타지․SF작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 라고 정리할 수 있는 거장이다. SF 분야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휴고상을 5회, 네뷸러 상을 6회나 수상하신 분. 굳이 비유하자면 아카데미상, 황금종려상 등을 한 30번쯤 수상하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한 10개쯤 목에 걸거나, 수학계의 필즈상을 2번쯤 받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상상 그 이상.
이렇게 많은 상을 수상할 정도로 다작을 했고 지금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은 넒은 대양에 수많은 군도로 이루어진 “Earthsea"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어스시 연대기>와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유명한 <헤인 연대기>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단편과 중편을 발간했고 동화도 많이 썼다. 아직도 너무나 활발히 작품활동 중이라 그 유명세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집“은 출간되지 않으신 분.
또한 환상적인 표현으로도 유명하다. 섬세한 감성, 몽환적 설정과 은유가 넘실거리는 문체, 디테일 넘치는 심리,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 정적이면서도 여백의 미를 살린 묘사가 압권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고 기적적으로 이를 극복하게 한다. 독자들 간 떨어지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으신 분.
그렇다면 그의 작품세계는 어떠할까. 놀랍게도 여타 다른 SF작가와는 궤를 달리한다. 주로 깨달음, 자아의 완성, 양성평등, 자연과의 조화, 평화 등이 그의 모든 작품에 깊이 베여 촉촉한 그 향을 읽는 이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국내 발간본은 번역이 영 아니다. 오죽했으면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 한 것이 훨씬 더 읽기 좋았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읽으실 분은 꼭 “황금가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시길)
필자는 개인적으로 독서를 하면서 마치 벼락이 치는 듯 한 느낌을 받은 “진실의 순간”이 단 한번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스시연대기>의 1편인 <어스시의 마법사>의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이하는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으므로, 책을 보실 분은 “절대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불러낸 어둠의 그림자와의 추격전. 쫓고 쫓기는 백척간두의 순간에서 간신히 탈출한 주인공 게드1), 스승 오지언의 도움으로 어둠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심. 이후 섬에서 섬으로, 다도해의 끝에서 끝으로 그림자 추격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 끝 저너머, 빛과 어둠이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게드는 그림자의 진정한 이름인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림자와 합쳐져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게 된다.
선과 악은, 빛과 어둠은, 소리와 침묵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빛은 어둠에서 생기며 소리는 침묵에서 생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다른 모습들이 상존한다.
게드는 마지막에 그림자가 자기 자신이란 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가 된다.
스스로를 진정으로 알고, 그것을 포용하고, 그리고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결국 삶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내면 깊이 숨겨진, 보여주기 싫은 모습일지라도 그 또한 나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다.
진정한 자신, “나”는 누구인지 말이다.
1) 그림자가 게드의 진정한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대항할 수 없었다. 어스시 세계관에서 진실한 이름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