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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차 이정국 기자의 생애 첫 내집, 23평 다가구주택 셀프 리모델링 분투기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 비록 ‘어마무시한’ 대출로 하우스푸어 신세가 됐지만, 가족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것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막상 집 계약을 해놓고 보니 막막했다. 10년이 넘은 다가구주택은 신혼부부가 살기엔 너무나 ‘올드’했다. ‘대충 살자’는 남자와 ‘이대로는 못 산다’는 여자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결국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남들이 그러하듯 ‘업자’를 찾았다. 신혼부부를 위한 온라인 카페에서 “저렴하고 잘한다”는 인테리어업체에 견적을 맡겼다. 전용면적 77㎡(23평)짜리 주택인데도 부담스런 가격을 제시했다. 몇 군데 더 알아봤으나 가격은 대동소이했다.
이 면적대 아파트 인테리어 견적은 2000만~3000만원 사이에서 형성된다. 지극히 평범한 인테리어가 그렇다. 좀더 개성있고 예쁜 집을 만들기 위해선 디자인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고, 가격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고민에 빠졌다. 예산이 제한돼 있으니 잡지에 나올 만한 예쁜 집을 꾸미긴 힘들고, 평범한 집을 원하는데 이 정도로 많은 돈을 들여야 할까?
우리는 돈을 주니
공사는 너네가 해라 식으로
방치하면 집 망치기 십상
꼼꼼하게 공사 상황 챙기고
맘에 안들면 바로 수정 요청해야
주변에 조언을 구하면서 ‘마도구찌’란 말을 듣게 됐다. ‘마도구찌’는 ‘창구’를 뜻하는 일본어다. 인테리어업체에서 직접 시공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테리어업체가 창구가 돼서 부분별 시공을 발주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마도구찌’라고 불렀다.
‘마도구찌’는 ‘셀프 인테리어’와는 다른 개념이다. ‘셀프 인테리어’는 전문 시공자 수준은 아니지만 ‘손수 제작’(DIY)이 가능한 건자재를 구입해 스스로 시공하는 것을 말한다. ‘마도구찌’는 일종의 중개 역할이기 때문에 시공은 전문 시공업자가 한다. 다만 중개 수수료와 공사 관리비가 빠지니 가격이 그만큼 절감된다.
‘마도구찌’를 해서 남은 돈으로 아내의 소원(?)이었던 브랜드 싱크를 설치했다. 싱크 타일은 직접 고른 뒤 화장실 공사할 때 같이 시공을 맡겼다. 식탁은 기존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인조 대리석 상판을 얹었다. |
욕실은 모던한 느낌을 주기 위해 회색 톤으로 했다. 해바라기 샤워기는 건축 박람회에서 찜했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품. |
효과는 컸다. 인테리어업체를 통해서 할 때보다 아낀 돈으로 평소에 갖고 싶었던 가죽소파와 책장, 에어컨 등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자재는 애초 업체가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고급으로 했는데도 말이다. 엄두도 못 내던 ‘브랜드 부엌 싱크’를 할 여유도 생겼다. 문손잡이나 수전, 조명 하나하나까지 전부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만족도가 높은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든 집’이라는 자부심이었다.
인테리어는 크게 목공, 욕실, 도배, 부엌, 바닥, 조명, 새시 공사로 나뉜다. 여기에 페인트와 필름 작업이 추가된다. 서울 을지로에는 이 모든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인테리어의 메카나 다름없다. 물론 값비싼 수입품을 취급하는 매장은 강남에 많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공이다. 목공은 인테리어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티브이 뒤쪽인 ‘아트월’을 어떻게 할지, 몰딩(테두리 장식재)을 어떻게 할지 등을 결정하고 문짝과 문틀 교체 작업도 이 목공업체에서 도맡는다. 조명 및 전기 공사를 하기 전에도 목공 작업은 필수다. 전등을 어디에 달지, 플러그를 꽂을 자리를 어느 쪽에 만들지 등을 시공자와 협의해 위치를 정한다. 조명 공사를 계약할 땐 “언제 목공이 오느냐”고 묻는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다.
우리집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마루가 나오는 ‘휑한’ 구조였다. 목공업체와 상의해 중간벽과 중문을 만들었다. 별것 아니었지만 신발장 및 현관 공간이 확보되고 방음이 강화됐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훨씬 안정적인 느낌도 줬다.
조명은 전부 엘이디(LED) 제품이다. 대부분 집에 있지만 쓰지 않는 포인트 등도 엘이디여서 전기료 부담이 적다. |
욕실은 목공과는 별도로 진행되지만, 만약 문틀을 교체한다면 목공과 일정을 맞춰야 한다. 문틀을 해체할 때 욕실 타일에 손상이 오기 때문에 목공 공사가 끝난 뒤에 욕실 공사에 들어가야 한다. 욕실은 을지로3·4가에 몰려 있는 타일 상가에 가면 타일부터 도기까지 전부 해결할 수 있다. 타일과 도기, 수전 등을 원하는 대로 고르면 해당 업체에서 시공업자를 연결해준다. 발품을 팔아 많이 보고 견적을 비교해보는 게 좋다.
이런 식으로 도배, 부엌, 바닥 공사를 진행한다. 해당 가게에 찾아가 주문을 하고 시공 일자를 받는 식이다. 일부 제품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따로 알아봐도 된다. 제품을 미리 받고 시공하는 날에 맞춰 설치를 부탁하면 된다. 아주 특별한 제품이 아니라면 추가 비용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도 수전이나 포인트 조명, 문손잡이 등은 인터넷이나 해외 직구 등을 이용했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드는 곳이 바로 새시다. 30평대 아파트의 경우 새시 교체 비용만 때론 1000만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럴 때 페인트와 필름을 이용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새시 교체 효과가 난다. 원하는 색깔의 페인트를 덧칠하거나 필름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우리는 필름과 페인트를 반반씩 시공했다. 필름 시공은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이지만 나중에 필름이 벗겨질 우려가 있고, 특히 유리를 고정하는 실리콘이 필름과 다른 색깔이면 실리콘 작업을 추가로 해야 하는 등 비용이 발생한다. 페인트는 필름보다 외관상의 매끄러움은 덜하지만 관리가 쉽다. 긁혀도 다시 칠하면 그만이다. 페인트는 셀프 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한번 해보면 전문 시공업자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방문이나 몰딩의 경우 교체해도 그다지 비싸지 않으니, 색깔이나 디자인이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체해도 큰 부담은 없다. 재활용도 적극 검토 대상이다. 처음엔 넓어진 주방에 맞춰 식탁을 새로 사려 했다. 하지만 비용 절약을 위해 기존에 쓰던 아일랜드 식탁 위에 인조 대리석 상판을 얹었다. 10만원 남짓 들였는데 근사한 식탁이 새로 생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콘셉트와 일정 잡기다.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인테리어 콘셉트를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닌 우리도 각종 전람회를 찾아다니고, 잡지나 책 등을 통해 감을 익혔다. 많이 보는 만큼 안목도 넓어지게 마련이다. 하나하나 고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부부일 경우, 결정은 한 사람이 하는 게 현명하다. 의견이 갈릴 경우 공사 들어가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콘셉트를 잡았다면 시공 일정 조율을 해야 한다. 일정만 잡히면 인테리어의 70%는 끝난 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철거-목공(조명 및 전기 기초공사)-욕실-필름 및 페인트-도배-조명-바닥-부엌-입주청소 순으로 하면 무리가 없다. 최소 2주 정도로 잡는 게 여유롭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돈을 절약하는데 대가가 없을 리 없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원래는 인테리어업자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는 돈을 주니, 너네는 공사를 해라’라는 식의 사고다. 집 망치기 십상이다. 꼼꼼하게 공사 마무리 상황을 살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정 및 추가 요청을 해야 한다. 배 떠나면 그만인 것처럼 인테리어 쪽에서 ‘애프터서비스’는 기대 안 하는 게 좋다.
대부분 시공업자는 일용직이다. ‘하루벌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아침 8시께 나와 오후 5시께 퇴근하는 게 불문율이다. 퇴근시간이 늦어지면 일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같은 일당을 받는데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침대, 서랍장, 커튼 모두 기존에 쓰던 것들. 암막 커튼을 달아 주말 늦잠을 방해받지 않도록 했다. |
공사 초반 욕실 타일 공사가 길어져 밤 8시께 끝난 적이 있다. 시공이 어려운 작은 타일(모자이크 타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타일 위치가 삐뚤빼뚤하고 줄눈 사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등 마감이 엉망이었다. 주말을 헌납해 시멘트로 타일 사이 줄눈을 메우고 위치를 바로잡는 등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공사가 끝난 뒤 나오는 각종 폐기물을 치우는 건 당연한 ‘잔무’였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화로 “알아서 잘해주세요”라는 접근이 화근이었다.
다음부터는 출근길에 들러 물과 음료수를 사다드리고 적지만 점심값을 챙겨드렸다. 저녁에는 빨리 일을 마치는 사람이 현장으로 가 마감 상황을 지켜봤다. 그 뒤론 훨씬 공사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결국 노동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좋은 집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금도 집을 둘러보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해결이 가능한지 알게 됐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실리콘 좀 바르면 되겠네”, “백시멘트로 좀 메워”, “페인트칠 좀 하면 되겠네” 등 이른바 ‘솔루션’을 찾은 것이다. 가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럴 때마다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다시는 안 해!”
많은 손님들이 오가는 활기찬 공간과 가족들을 위해 조용한 방이 살갑게 공존하는 용인 기흥구의 성아네 집
건축가 성상우(44)씨는 ‘문턱이 닳는 집’을 짓는다. ‘문턱이 없는 집’도 아니요, ‘문턱이 높은 집’도 아니다. 사생활을 보호해줄 문턱은 분명히 있으되 끊임없이 손님을 불러 모으는 집. 손님이 많이 와도 개인 생활이 가능한 집. ‘푹 퍼져 쉬는 곳’만이 아닌 ‘기능’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가득 찬 집. 지난 3년 동안 이러한 화두로 지은 단독주택만 경기 파주·안양, 강원도 춘천·강촌 등에 6채다.
그중 가장 최근에 완공된 집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의 ‘성아네 집’이다. 땅콩집을 포함해 다양한 디자인의 주택이 가득한 이 동네에서도 성아네 집은 단연 눈에 띈다. 건물 전면을 장식한 국산 낙엽송의 화려한 색감, 육각 면의 특이한 건물 모양 때문에 우선 그러하다. 지난 22일 찾아간 집은 북향의 필지 안에서 남쪽으로 살짝 돌아앉아 온몸으로 햇볕을 받고 있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아는 사이다. 얼마 전까지 성상우 건축가가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을 모아 <명심보감>을 가르쳤는데 그곳에 성아 남매가 왔다. 당시만 해도 성아네는 아파트에 살았다. 전세 계약 만기 날짜가 도래했고,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6천만원 올려달라고 했다며 한숨 쉬는 공상훈(42)·주윤정(39) 부부에게 성상우 건축가가 ‘집 짓기’를 권했다. 함께 땅을 물색하다 북향에 반듯하지 않은 땅 모양 덕분에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왔던 현재의 필지를 구입했다.
삼각형 둘째 방 다락놀이방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 빼곡
좁은 공간을 반층씩
6개 높이로 촘촘히 구성해
담당 공무원도 놀라
건축주 가족의 예산 상황을 잘 알았기에 건축가는 굳이 자신이 추구하는 ‘문턱이 닿는 집’을 권하지 않았다. 평범한 2층집 시안을 포함해 4개의 조감도를 내밀었다. 부부는 예상외로 ‘문턱이 닳는 집’을 선택했다. 육각형으로 각지게 집을 짓고 삼각형으로 나선형 계단을 만들어 2층을 반층씩 쪼개는 특이한 방식으로 집을 짓자면 건축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건축비를 2억5천만원 이하로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성공이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의 북향 필지에 돌아앉은 형태로 서있는 ‘문턱이 닳는 집’ 전경. |
건축가와 건축주가 상의해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심을 둔 부분은 세가지다. 두 아이가 친구들과 맘껏 놀면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숨은 공간’이 많은 집, 성아 엄마 주윤정씨가 동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확보된 집, 그리고 무엇보다 햇볕이 잘 드는 밝은 집이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을 불어넣은 집을 지어달라는 ‘어려운 주문’도 있었다.
이 집의 문턱을 닳게 할 이들은 두 부류일 터였다. 윤정씨에게 수학을 배우기 위해 이 집을 찾는 아이들과 부모들, 그리고 두 자녀의 친구들.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방이 수학을 가르치는 방이다. 현관 왼쪽에는 공용 화장실이 있다. 수학을 배우기 위해 집을 찾은 이들은 해당 ‘작업실’과 화장실만을 이용하면 된다. 위층의 ‘프라이버시’는 고스란히 지켜진다.
나머지 공간은 집 한가운데 있는 삼각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철저히 쪼갰다. 고도 제한으로 2층집만 지을 수 있는 지역 특성을 고려해 최대한 공간을 확보할 계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미’를 위해서였다. 현관에 들어서면 계단에 이르기 전 왼쪽이 화장실, 오른쪽이 거실이다. 반층을 올라가면 수학 배우는 방, 그 오른쪽으로는 부엌이다. 거기서 반층을 다시 올라가면 정면에 세면대와 거울이 보인다. 세면대 왼쪽에는 변기만 있는 화장실, 오른쪽에는 세탁실과 목욕탕이 분리되어 있다.
거실에서 반층 올라와 있는 부엌에 걸터앉은 세가족. |
성아 방에서 놀이방으로 이어지는 미끄럼틀. |
일곱살 순형이의 ‘삼각형 방’과 천장이 낮은 ‘다락 놀이방’을 지나 또 반층을 올라가면 누나인 성아의 방이다. 동생을 ‘차단’하기 위해 벌써부터 방문에 ‘들어오지 마시오’란 팻말이 붙어 있다. 누나 방과 ‘다락 놀이방’은 미끄럼틀로 이어져 있다. 미끄럼틀을 타고 반층 내려와 동생과 만나 논다. “아이 친구들이 자기 집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요.” 성아네 집에 오면 친구들이 좀처럼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를 않는다며 주씨가 덧붙였다. 집을 찾은 날에도 순형이의 친구가 와서 하루 종일 놀았다.
거기서 반층을 또 올라가면 드디어 안방이 나온다. 안방이지만 어른이 간신히 설 수 있는 높이의 다락방이다. 침대와, 침대에 누워서 바라보면 산이 내려다보이는 창문만 있다. 나머지 다락 공간은 ‘아빠의 동굴’이다. 이 집의 유일한 텔레비전이 이곳에 있다. 남자를 위한 동굴인가 했는데 아이들이 만화를 더 자주 본다고 한다. 다락 공간을 살리니 실평수가 165㎡(50평)에 달했다.
그리하여 성아와 순형이는 “우리집은 6층집”이라 말한다. “건축 허가를 받을 때도 담당 공무원이 당혹스러워했을 정도”로 공간 활용 상상력이 뛰어나다. 집을 육각형으로 지어 비스듬히 땅에 앉히니 등을 맞댄 필지의 집과 집 사이로 햇볕도 듬뿍 받을 수 있게 됐다. 정원도 여러 쪽이 생겨 좁은 쪽에는 텃밭을 일구고 넓은 쪽에는 에어바운스 수영장을 만들었다. 부엌과 이어진 다른 쪽 정원은 가족이나 손님들과 바비큐를 하며 즐기는 공간이다.
이 유쾌한 집 구상은 건축가의 아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상우 건축가의 애초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 건축학 전공을 학부부터 다시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건축학부에서 공부하던 중 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어렵게 공부를 이어간 그에게 외환위기가 닥친 90년대 말은 혹독한 시간이었다. 공황장애가 발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몇 년이 흘러갔다. 오랜 시간 성상우 건축가는 집 안에 머물며 스케치를 하고 집에 대해 고민했다. “집에 갇혀있다 보니 집이라는 공간에 더 예민해졌다”고 한다. 한학을 공부하며 마음을 다잡아갔고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치며 집 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집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작업도 하며 활기가 있는 삶을 꿈꿨다. ‘문턱이 닳는 집’은 그런 역사 속에 구상됐다.
그는 경기도 판교의 타운하우스 ‘월든 힐스’ 작업을 통해서도 이러한 철학을 구현했다. 설계는 야마모토 리켄 요코하마 국립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가 맡았고 그는 야마모토리켄설계공장 한국지부장을 맡아 커뮤니티 기능을 회복한 공동주택 프로젝트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했다. 3~4층짜리 단독주택의 군집 형태인 이 타운하우스는 모든 주택의 2층 공간을 전면 유리의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공용 데크를 통해 이웃과 연결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문턱이 닳는 집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 집에서 사는 가족이 가난하더라도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경제 활동도 하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거죠. 앞으로도 건축주와 친구가 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에게 맞는 좋은 집을 지어나가고 싶습니다.” 건축가 성상우의 말이다.
비용과 관리부담 줄이기 위해 이동식 주택 고른 직장인 김수병씨의 충주 아리마을 세컨드하우스
지난해 1월 북한산 산행 뒤풀이에서 친한 선배의 “집을 짓는 순간 후회한다”는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면 지금쯤 지중해식 목조주택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실관리의 표본이 되었을 게 뻔하니 말이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던 이웃집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1년여 동안 경험하고 있다. 어쨌든 당시 선배의 ‘조언’을 새겨들어 전원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쾌적한 주택을 포기했다. 순식간에 욕망의 크기는 작아졌고 화려한 전원생활에 대한 미련도 사라졌다.
이동식 주택의 현관과 정면. |
충북 충주시 앙성면의 아리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앙성댁’이 생각나는 그곳에 전국 최대의 전원마을이 조성되고 있었다. 먼저 둥지를 튼 친구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미분양 부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순간 홈쇼핑 채널에서 발동되던 구매욕이 꿈틀대는 것을 아이 엄마도 눈치챘을 텐데 애써 말리지 않았다. 마을을 한바퀴 둘러본 뒤 시행사의 현장사무소를 찾아가 370㎡(공유지분 포함) 땅의 계약금을 카드로 결제했다.
주중 생활권에서 100㎞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땅. 어떤 집을 짓더라도 출퇴근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아리마을 100여가구 가운데 20여가구만 상주하고 나머지는 5일간 도시에 살고 2일은 시골살이를 하는 ‘5도2촌’용 세컨드하우스로 이용한다고 했다. 윗집은 하루 근무하고 이틀을 쉬는 부부 역무원이었다. 그런 근무환경이라면 수도권 원거리 출퇴근도 가능할 것 같았다. 겨우 주말에 하루이틀을 보낼 처지에서는 ‘글램핑’ 전용 세컨드하우스가 제격인 듯했다.
바닥면적 29.37㎡의 좁은 실내지만 세층으로 나뉘어 공간을 최대로 활용했다. |
애초 시행사는 땅을 분양하며 시공까지도 도맡고 있었다.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유지하려면 시공도 지정 업체에서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현장사무소가 철수하길 기다렸다가 내 식대로 집을 짓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빈터는 마을의 건축 폐자재 처리장으로 용도변경되어 상주 가구에서 기르는 견공들의 배설구역 구실을 했다. 게다가 논에서 대지로 지목을 변경할 수 있는 기한도 다가왔다. 하는 수 없이 컨테이너 농막이라도 갖다 놓기로 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직접 땅을 골라 나무를 심었다. |
놀랍게도 돌파구는 인터넷 컨테이너 쇼핑이었다. 농막을 검색하다 보니 신세계가 보였다. 이동식 목조주택이라는 게 있었다. 우선 소형 목조주택을 갖다 놓았다가 다른 게 필요할 때 어딘가로 옮긴 뒤 새로 지으면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기왕 글램핑 전용이라면 컨테이너보다는 공간 배치가 쓰임새 있는 이동식 주택이 매력적이었다.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다 ‘피터팬의 꿈’이라는 이동식 목조주택에 순간적으로 꽂히고 말았다.
임시 컨테이너 농막 찾다가
발견한 이동식 주택에
내 손으로 직접 꾸민 정원
풀과의 전쟁은 고되지만
잠자던 몸이 깨어나는 느낌
피터팬의 꿈은 건축박람회에 출품된 소형 이동식 목조주택이었다. 견본주택으로 지어놓은 게 경기도 화성에 있다고 했다. 곧바로 찾아가 건물을 살펴봤다. 바닥 면적 29.37㎡에 실면적 37.20㎡ 크기로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4100여만원이었다. 화성에 있는 주택은 견본주택으로 쓰인 것이라 조금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다고 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내 이동식 목조주택 매매계약서에 서명하고 건물 위아래를 분리한 뒤 크레인을 이용해 대형 트럭으로 옮겼다. 별도의 운반 비용이 들어갔다.
붙박이 이불장으로 층을 구분하는 등 집 자체가 가구식 구조다. |
건물의 외형은 직사각형 한쪽을 삐딱하게 세운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이다. 은퇴한 부부의 전원생활 거처로 디자인하면서 동화적 상상력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려 했다고 한다. 실내로 들어가면 몇 개의 단 차이를 이용한 세개의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계단을 통해 다른 바닥을 밟는데, 별개의 공간이 아닌 까닭에 무중력 공간에 진입하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피터팬이 시간을 거스르고 중력에서 벗어났던 것처럼 실내를 ‘유영’하게 된다는 말이다. 큰아이는 다락방에 머물기를 좋아하고 둘째는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며 떠돈다.
이처럼 실내는 세 층이지만 주방과 거실, 1.5층, 다락방 등이 계단으로 연결된 원룸형이다. 다락방은 철제빔으로 하부와 연결되어 이동 시 분리된다. 여기에 창고 바닥까지 있으니 여러 층의 바닥이 조성된 셈이다. 별도의 내부 인테리어는 들어설 틈이 없다. 붙박이 장롱을 대신하는 이불장이 실내 아래층과 위층을 구분하는 구실을 한다. 별도 보일러실이 없기에 전기 패널과 순간온수기를, 식탁 대신 접이식 캠핑 탁자를 쓰는 식이다. 가구식 구조에 따른 오붓한 공간인 셈이다.
붙박이 이불장으로 층을 구분하는 등 집 자체가 가구식 구조다. |
이동식이라지만 집을 짓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야 했다. 40㎝ 콘크리트로 기초공사를 한 뒤 수도와 하수도 등 배관시설을 해서 집을 올렸다. 견본주택 정면 아래의 빈 공간을 창고로 개조하고 목조데크도 설치했다. 그렇게 해도 대지의 상당 부분은 빈터로 남아 있었다. 건물 뒤편은 텃밭으로 이용한다 해도 5분의 3쯤 차지하는 전면은 조경공사가 필요했다. 마을 인근의 조경업체에 문의했더니 호화저택 수준의 가격을 제시했다. 좋은 나무 몇 그루 추가하면 집값을 넘어설 태세였다.
내 식대로 저렴하게 조경미를 추구해야 했다. “집짓기를 구매욕으로 대신했으니 뭔가 내 손으로 하는 것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앞마당은 잔디를 깔고 주변 바닥은 자갈과 판석을 놓는 간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도로 쪽 담장에는 마을 인근의 돌산에서 나오는 돌을 쌓아 화단을 만들었다. 건물 주변에 3개의 빗물받이를 묻기 위해 땅을 파서 피브이시(PVC)를 연결하며 진땀을 흘렸다. 마당 중앙에 있던 수도 계량기를 옮기려고 파 내려간 1m 깊이의 웅덩이에서 관을 연결하다 엄청난 수압에 손바닥이 찢기는 아찔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동식 주택을 정위치에 놓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웬만큼 사람 사는 집 모양을 갖추는 데는 100일가량 소요됐다. 주말마다 생각나는 대로 일거리를 처리한 때문이었다. ‘거액’을 들여 소나무 다섯그루를 옮겨 심었는데, 벌써 세그루는 고사하고 말았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소나무 판매자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상수도 배관에 열선을 설치하지 않아 혹한기에는 실내에 텐트를 설치해도 지내기 힘들 만큼 추웠다.
올해 봄날이 찾아오면서 전원살이에 본격적으로 다가섰다. 히아신스 모종 80개를 화단에 심었지만 봄날이 지나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년생 야생화라고 해서 심었던 아기범부채, 무늬도라지도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다만 데크 아래의 옥잠화와 바람꽃, 산수국이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채소는 모종을 심고 씨도 뿌렸다. 상추와 방울토마토는 두달여 동안 수확의 기쁨을 느끼게 했지만 명월초는 간격을 너무 조밀하게 심어 풀숲과 다를 게 없다. 사과와 매실, 앵두, 포도 등의 과실수를 심었지만 수확은 포도 두송이와 심지도 않았는데 넝쿨째 들어온 호박 한개가 전부일 듯하다.
이 모든 초보농군의 ‘아픔’은 풀에서 비롯되었다. 잡초의 질긴 생명력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여름날 불볕더위에도 풀과의 사투를 벌였다. 심지어 해질녘에 내려가 헤드랜턴을 머리에 착용하고 심야에 풀과의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풀을 제거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화단의 꽃에 영양분을 공급했을 터이고, 과실수의 진딧물도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리마을 이웃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야만 해법을 찾을 텐데, 주말 잠시 머물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 차라리 풀숲의 매력에 빠지는 게 빠를지 모르겠다.
주말에 갈 데가 있다는 게 일상의 윤기로 작용한다. 때론 한두시간 풀을 뽑겠다는 생각만으로 고속도로에 들어서기도 한다. 다락방 경계 칸막이를 책꽂이로 사용하면서도 책장을 넘긴 기억이 없다. 초여름에 구입한 스탠드 해먹을 설치한 게 최근의 일이고, 대형 그늘막 텐트는 아직 창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역에 시달리는 게 글램핑은 아닐 텐데…” 하면서도 몸이 깨어나는 앙성을 향한다. 시시때때로 “충주 가자”고 칭얼대는 네살배기의 놀이터가 거기니까.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에 지어진 ‘평화를 품은 집’은 산비탈에 나무로 지어진 평화 전문 도서관으로 인종 학살과 전쟁 문제에 대한 자료들을 공유하는 곳이다. 노바건축사사무소 설계. 2014년 9월 개관 예정. |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경기 파주에 평화를 주제로 한 도서관과 각자의 집을 지은 소라네·동렬이네
우리 오래도록 함께 살자. 같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함께 나이 들자. 2002년 일곱 가족이 모여 약속했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야산 비탈진 곳에 함께 살 터전을 구했다. 노바건축사사무소 강승희 대표 등 3명의 건축가가 일곱 가족의 작은 마을을 짓기로 하고 그 약속을 기념해 작은 정자를 세웠다. 정자엔 ‘도토리 문화마을’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일과 생활이 일치하는 공간을 꿈꿨기 때문이다. 누구네 집은 공방을 하고 누구는 책을 쓰고 다른 누구는 또 그림을 그리며 도토리 마을을 일터로 삼아 살아가는 노후를 계획했다. 각자 집을 설계하며 배움을 시작했다. 드문드문 모여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누구는 아프기도 하고, 누구는 경제적 어려움에 쫓기기도 했다. 누구는 다른 곳에 살 집을 얻어야 했다. 십년 넘도록 땅은 묵고 정자는 나이 들어가며 약속은 묻히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소라네 가족이 동을 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어야겠습니다.” 건축가도 맞장구쳤다. “일단 땅을 파면 집은 분명히 지어집니다.” 동렬이네 가족도 “그럼 짓자”고 거들었다. 10년의 약속과 2년의 설계를 통해 지난해 말 두포리에 ‘평화를 품은 집’이라 이름 붙인 평화도서관과 소라네 집, 동렬이네 집. 3채의 집이 지어졌다.
소라네 집은 반층 계단으로 높이를 나누어 여분의 공간을 도모한 집이다. 그 결과 집 곳곳에 가족 각각의 독립적인 공간이 태어났다. |
동렬이네 집은 1층과 2층을 터서 작은 집 느낌을 없앤 수직의 집이다. |
문화마을 꿈꾸며
일과 생활을 함께 하는 공간
준비했던 일곱 식구
10년만에 두 식구 의기투합해
도서관과 각자의 집 지어
평화도서관 ‘평화를 품은 집’
파평교회 옆으로 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지은 지 얼마 안 된 3채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맨 왼쪽에 있는 집이 평화를 주제로 한 도서관으로 지어진 ‘평화를 품은 집’이다. 집장 혹은 이장이라는 별명의 명연파(53)씨가 이 도서관의 관장을 맡았다.
올해 9월27일 문을 열 예정인 평화를 품은 집의 잠겼던 문을 열자 향긋한 나무 냄새가 입구까지 풍겼다. 현관문을 열면 도서관의 2층으로 들어서는데 1층과 2층 사이는 완전히 트여 있다. 입구에서 도서관 1층 창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도서관과 두 살림집은 45도 가까운 가파른 산비탈에 지어졌다. 도서관이 깔고 앉은 땅은 185.67㎡. 공공건물치고는 작지만 경사진 땅을 이용해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설계를 맡은 강승희 대표는 비탈길을 이용해 2층, 1.5층, 1층 식으로 건물의 층을 잘게 나누어 비탈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을 썼다.
사명감으로 빚어진 공간인 탓일까, 이곳의 풍경은 교회 예배당을 닮았다. 지난해까지 사계절 출판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했던 명씨는 어린이 문화마을의 꿈이 평화도서관으로 항로를 변경하자 르완다, 아르메니아, 오키나와, 캄보디아 등 대규모의 양민 학살 지역을 다니며 수백권의 원천자료를 모아왔다. 학살 증거에 대한 책과 자료, 동영상들이다. 도서관 메인홀 양쪽에 천장까지 닿는 길고 큰 책장을 두어 어린이와 어른들은 내키는 대로 책을 빼들고 계단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계단 옆 책장 칸칸마다 틀을 대면서, 1층과 1.5층 사이에 애들이 숨어들어가기 좋은 낮은 구석방을 만들면서, 건축가는 “애들이 도서관 한복판을 자유롭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도서관 오른편 1층은 작은 상영관이다. 1.5층의 객석에서 볼 수 있다. 2층은 제노사이드(대학살)관으로 꾸며져 관련 자료나 사진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아이들은 다락이나 계단 아래 숨어서 평화롭게 책을 읽다가 문득 평화를 잃은 나라의 모진 풍경을 훔쳐도 볼 수 있으리라.
4 거실 다락에 만든 나즈막한 어머니의 서재는 현대주택에 한옥의 느낌을 보탰다. |
도서관과 두채의 살림집을 함께 지은 양은영(왼쪽부터), 황수경, 명연파씨와 산자락을 따라 지어진 집들. 맨 왼쪽이 평화도서관이다. |
두 채의 살림집 ‘소라네·동렬이네’
이 집의 인연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연파씨의 부인인 황수경(52)씨는 파주 다율리 한 출판사 창고에 ‘꿈꾸는 교실’이라는 어린이 도서관을 열었다. 군부대로 드나드는 차만 있을 뿐 버스도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황씨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곳에 어린이들이 찾아들 만한 책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서관을 열었다. 그때 꿈꾸는 교실을 근거지 삼아 모인 사람들이 같이 집 짓기로 약속한 7가족이었다. ‘동렬이네’ 집주인인 양은영(47)씨는 “사람들이 포기할 때 나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소라네에게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두 집이 돈을 모아 도서관을 함께 짓고 각자 살림집을 지었다. 두 가족은 꿈꾸는 교실의 이름을 딴 꿈교 출판사도 만들었다. 출판사는 황수경씨와 양은영씨가 함께 꾸려간다. 일터도 꿈도 합친 두 가족의 집은 어떻게 다를까.
1, 2층 다 합쳐도 83.97㎡ 넓이. 자그마한 양은영씨 집은 2층까지 거실을 터서 훤한 느낌이다. 건축가는 “상대적으로 면적이 작은 동렬이네는 열린 집으로, 넓은 소라네는 좀더 복잡한 구조로 설계했다”고 했다. 1층에서는 아들 동렬이가 지내고 2층에는 엄마 침실이 있다. 전원주택 같은 현대식 나무집으로 지어졌지만 한옥을 좋아하는 건축가는 곳곳에 한옥 같은 공간을 두었다. 소라네 집에서 침실 앞에 놓인 툇마루가 그렇고 양은영씨 집에서 엄마 침실과 이어진 한옥의 누마루 같은 다락이 또 그랬다. 아들과 사는 집에서 양씨의 작은 마루는 엄마만의 서재다. 아들 동렬이가 오가는 거실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이웃 명연파·황수경씨와 눈맞춤할 수도 있는 이곳에서 엄마는 엄마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따로 또 같이 산다.
도서관과 두채의 살림집을 함께 지은 양은영(왼쪽부터), 황수경, 명연파씨와 산자락을 따라 지어진 집들. 맨 왼쪽이 평화도서관이다. |
소라네 집은 반층 계단으로 높이를 나누어 여분의 공간을 도모한 집이다. 그 결과 집 곳곳에 가족 각각의 독립적인 공간이 태어났다. |
4명의 가족이 사는 명연파·황수경씨의 집 ‘소라네’는 좀더 크다. 1, 2층 합쳐 114.75㎡인 이 집도 실제론 2층이지만 4층처럼 나누어 좁은 면적을 알뜰히 활용했다. 가족들은 1.5층 거실에서 출발해 1층 부부 침실로 내려갈 수도 있고 2층 딸방으로 올라갈 수도, 2.5층 아들방에 머물 수도 있다. 설계를 맡은 강승희 대표는 레고 블록 조립하듯 각각의 공간을 쌓아 숨은 공간과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독립된 방을 여럿 마련했다. 1층 부부 침실 옆편에는 흔한 벽장이 있다. 그런데 벽장문을 열면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몸을 숙여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나온다. 가족들이 ‘방공호’라고 부르는 이곳은 안 쓰는 물건을 넣어두는 창고로도, 누군가 숨어 있고 싶을 때도 이용된다. 명연파씨는 “예전에 서로가 훤히 파악되는 아파트에서 살 때는 딸은 집에서 손님 같았다. 이제 독립된 방에서 사는 딸은 더 자주 거실로 나온다. 이 집의 주인 같다. 공간을 바꾸며 사람의 관계가 새롭게 맺어졌다”고 말했다.
혼자 지었으면 외로웠을 뻔했다. 너무 붙어 있었으면 힘들 뻔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높은 3채의 지붕이 함께 살고 싶었던 가족들의 꿈을 속닥인다. 아직 짓지 못한 5가족의 자리, 나머지 빈터는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과 속초 ‘발코니집’의 전경. |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방마다 실내로 파고드는 사다리꼴 발코니 만들어 식구들 간의 유대감 키워준 장봉주씨네 네 식구의 속초 주택
네모반듯한 건물에 사다리꼴 발코니가 박혀 있다. 넓은 창을 통해 집 안에는 햇빛이 한가득 들어왔다. 안으로 각을 세워 들어찬 발코니는 공간을 분리하고 동시에 잇는다. 열살 동생은 자기 방 안에서 발코니 너머 언니에게 손짓을 했다. 거실 발코니 밖 나무테라스에서는 허브 새싹들이 한들한들 움직였다. 이 집의 이름은 ‘발코니집’(Voidwall). 발코니의 재발견이다.
순두부로 유명한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도농복합지역인 이곳은 아파트 지대를 지나 주택밀집지역으로 들어가면 제법 농촌 분위기가 풍긴다. 비슷하게 생긴 양옥집이 모여 있는 마을에서 최근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집이 있다. “이 집은 언제 공사 끝나나?” 집이 완성되어 갈수록 특이한 그 모습에 동네 사람들은 집 주변을 서성이며 집주인인 장봉주(48)·백지연(44)씨 부부에게 묻곤 했다고 한다.
1층에 있는 제 방 발코니로
2층 언니 방 발코니가 보여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발코니를 통해 서로 손흔들고 자요
“결혼해서 18년 동안 아파트에만 살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우리 집을 지어보자’ 마음먹었어요. 올해 열일곱이 된, 그러니까 사춘기가 한창인 큰딸을 위해서라도 좀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집을 만들고 싶었죠.” 집주인 백지연씨는 이렇게 말하다가 큰딸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4일 오후 속초로 찾아간 기자를 백씨와 두 딸이 함께 맞이했다.
“이 집에 이사오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밤이면 홀로 발코니에 나가 맞는 선선한 바람….” 엄마 마음을 아는 큰딸 은지(17)양의 말이다. 막내 보윤(10)양도 말을 보탰다. “저도 좋아요. 1층에 있는 제 방 발코니를 통해서 2층에 있는 언니 방 발코니가 보이거든요. 밤에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발코니를 통해 서로 손을 흔들고 자요.” 7살 터울의 두 딸은 이렇게 추억을 쌓고 있었다.
거실 발코니에 모여 앉은 집주인 백지연씨와 두 딸. 네 식구는 이곳에서 상을 펴고 식사를 한다. |
이 단독주택은 285㎡짜리 대지에 지어진 1, 2층 합쳐 연면적이 136㎡(41평)에 불과한 네모반듯한 건물이다. 2층은 오직 큰딸만을 위한 공간으로 4평짜리 방과 발코니로만 구성된다. 건물의 사면에 현관, 거실, 안방, 서재를 따라 사다리꼴 발코니가 푹푹 박혀 있는 구조다. 사다리꼴의 네 면 중 세 면이 창문, 다른 한 면은 바닥과 색깔이 통일된 벽이다. 나무, 타일 등 각기 개성있게 연출된 발코니만으로 갤러리 분위기가 난다.
발코니(balcony)는 거실 공간을 연장하는 개념의 외부로 돌출된 부분을 뜻한다. 지붕은 없고 난간이 있는 형태이나 대개 아파트에서는 새시 시공을 통해 발코니 공간을 실내로 흡수한다. 테라스(terrace)는 정원의 일부를 높게 쌓아올려 거실이나 식당에서 정원으로 직접 나가게 하는 공간을 뜻한다. 이 집에서는 거실 발코니를 통해 나무판으로 된 널따란 테라스로 나갈 수 있다.
이 집은 정의엽(38) 건축가의 작품이다. 그는 2010년 경기도 양평에 지은 단독주택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됐다. 이후 ‘에이엔디’(AND)를 설립했다. 이름처럼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지우’고 ‘위계적인 구조에서 은폐되었던 다양하고 대립적인 가치와 욕망을 드러내고 새롭게 배치하는 과정에서 건축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집주인 부부와 정 건축가는 여러 차례 회의를 해 건축의 방향을 잡아갔다. “전에 살던 아파트가 겨울에 너무 춥더라고요. 건축가에게 무조건 햇살이 팍팍 들어오는 집을 지어달라고 했죠. 햇살을 듬뿍 받으며 살고 싶어서요.” 집주인 부부는 그밖에도 거실을 바라보며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구조, 큰딸만의 독립된 공간 등을 요청했다.
이 가족이 땅 구입부터 집을 짓기까지 들인 비용은 모두 3억원 정도다. 땅 구입 가격이 높지 않았고 집을 짓는 데 들이는 돈을 최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의 고민은 깊어졌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설계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면 빈틈없이 설계를 해야 합니다. 시공사 선정도 중요하고요.”
햇살이 잘 드는 두 딸을 위한 집…. 설계를 고민하던 건축가의 시선이 발코니를 향했다. “현대 주거공간의 특징 중 하나가 발코니를 통해 내부에서 외부를 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발코니는 건축적으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죠. 실제로는 중요하지만 배제되어 있는 공간, 그래서 짐도 막 쌓아두고…. 속초 ‘발코니집’은 발코니가 내부 공간을 분할하고 각 실들 사이의 관계 맺기를 주도하죠. 하나의 실은 하나의 발코니를 갖고요. ‘버려진 공간’으로 취급되던 발코니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과 속초 ‘발코니집’의 전경. |
그는 이전에도 발코니를 활용한 아이디어로 개성있는 건축물을 만들어왔다. 2011년에 경기도 양평에 지은 화가의 작업실 ‘스킨스페이스’는 전면의 거대한 창문과 유리문, 그 위의 나무장식으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고 풍경을 민감하게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 작업실은 ‘1억으로 건물짓기’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2012년에 지은 거제도 펜션은 각방의 발코니가 바다를 향해 손가락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펜션은 거제도의 명물이 됐다.
집 안으로 파고든 형태의 발코니 때문에 집이 좁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주인 부부는 대만족이다. “거실 안쪽으로 들어찬 발코니 안에서 네 가족이 모여 앉아 상에서 밥을 먹어요. 날 좋으면 창문 다 열어두고 선선한 바람 맞으면서요.” 테라스 바깥쪽에는 일부러 담을 두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 대여섯살 조무래기들이 테라스를 통해 들어와 함께 간식이나 밥을 먹고 간 적도 있다.
집은 가족의 생활 모습도 바꿔가고 있다. “제가 한때 꿈이 피아니스트였거든요. 실제 전공은 미술을 했고요. 주택으로 이사온 뒤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동안 손놓고 있던 공예도 다시 시작했다. 집 안 곳곳을 꾸미는 재미 덕분이다. 아이들도 자유로워졌다. 집 안에서 줄넘기를 해도 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도 된다. “바닥을 타일로 했으니 깨지면 다시 해 넣을 것”이라며 웃어주는 부모 덕분이다. 집 안 전체가 벽 안으로 들어가 있는 조명인 ‘벽등’이라 돌출된 조명이 없는 것도 집의 특징이다.
“주택에 산다는 것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마을 어르신들과 국수도 해 먹고 마을 꾸미기도 하며 살아가려고요.” 테라스 중앙에는 얼마 전 집주인 장씨가 단풍나무 한 그루를 가져다 심어두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할머니네 놀러 와 저 나무 밑에서 놀겠죠.” 발코니 너머 뛰어다니는 두 딸을 바라보며 백씨가 말했다.
살림집 앞에 선 유명훈·한서형씨 부부. 오른쪽 커다란 창 안으로 침실이 있고 침실 앞 데크는 마당까지 이어진다. 샘이 있던 자리 바로 앞에 집을 짓자 마당에는 물이 넘쳤다. 건축가는 작은 연못까지 이어지는 물길을 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넓이에 대한 통념을 깨고 도서관과 작업공간, 살림집을 나눠 지은 가평 유명훈·한서형 부부의 노출 콘크리트 주택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으로 가는 국도는 숲으로 뛰어드는 듯 푸르다. 수목원 가는 길, 축령산 자락에 둘러싸인 한 작은 전원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작은 집이 유명훈(38·코리아 시에스아르 대표)·한서형(38) 부부가 사는 곳이다. 결혼한 지 2년 좀 넘은 이들은 이곳을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기지로 삼았다.
아파트에서와 달리
이 집에서는 모든 공간을
하루 한번쯤은 지나가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가
움직임이 많아진다
“존경과 행복의 건축적 어휘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2012년 9월 가온건축 임형남 소장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물었다. 유명훈·한서형씨가 ‘존경과 행복의 집’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들의 첫 집을 지어달라고 찾아온 날이었다. 기업 컨설팅을 하는 남편은 존경의 가치가 담긴 집을 원했다. 긍정심리 강점 전문가로 일하는 아내는 행복의 집을 짓자고 했다. 존경과 행복이라는 부부의 이상, 말보다도 더 오래 지속될 희망과 꿈은 올해 5월 콘크리트 집 속에 깃들었다.
살림집 앞에 선 유명훈·한서형씨 부부. 오른쪽 커다란 창 안으로 침실이 있고 침실 앞 데크는 마당까지 이어진다. 샘이 있던 자리 바로 앞에 집을 짓자 마당에는 물이 넘쳤다. 건축가는 작은 연못까지 이어지는 물길을 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
“기업을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강연하고 컨설팅하는데 사회적 경영, 윤리적 활동, 인권, 노동, 친환경 제품 등 정말 많은 분야가 이 영역에 포함된다. 우리 삶이 지속 가능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집 때문이다. 집을 유지하느라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대출금을 갚느라 도시에 매여 산다. 책도 쓰고 강연도 하지만 지속 가능한 삶을 내가 실제로 살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유명훈씨의 말이다.
414㎡의 땅. 욕심껏 짓자면 330㎡까지도 집을 지을 수 있었지만 건축주 부부는 부담 없이 간수할 수 있는 99㎡ 정도의 작은 집을 원했다. 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는 이 작은 집을 아예 존경과 행복의 공간으로 나누어 두 채로 지었다. 왼편은 부부의 작은 도서관과 남편의 사무실이 있는 존경의 집이고 오른쪽은 살림집이 있는 행복의 집이다. 살림집은 동쪽을 향해 10도 정도로 몸을 틀고 있다. “처음 설계 땐 두 집을 나란히 남쪽으로 놓았는데 나중에 방향을 틀었다. 도서관이 더 높으니까 둘을 나란히 놓다 보면 존경과 행복 사이에 위계가 생겨버린다”는 것이 건축가의 설명이다. 덕분에 두 집은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쪽을 보고 있다.
유명훈씨의 사무실과 작은 도서관이 있는 공간. 4m 높이의 큰 책장을 세우고 작은 다락을 만들어 2층처럼 쓸 수 있도록 설계했다. |
부부의 작은 차실과 이어지는 뒷마당. 뒷산 울창한 숲이 그대로 보인다. |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존경과 행복의 집은 멀리서 보면 박물관처럼 엄숙하고 단정하다. 임형남 소장은 영국 신사처럼 단정하고 깔끔한 유명훈씨를 보며 콘크리트 집을 떠올렸단다. 처마 같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네모반듯한 집에서 커다란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부부는 커튼조차 달지 않고 해 뜨면 눈뜨고 해 지면 눈 감으며 서울과는 질적으로 다른 햇볕을 즐기고 있다. 한서형씨는 “아침에 눈뜨면 침실 머리맡 창을 통해 이마에 떨어지는 햇볕이 하루를 축복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살림집 현관으로 들어서면 안방 침실까지 한눈에 보인다. 45.86㎡ 작은 면적이지만 밖으로 열려 있어 부대끼지 않는다.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왼편 부부 차실에 걸터앉으면 뒷마당과 툇마루가 보인다. 오른편 주방 싱크대보다도 큰 아일랜드 식탁 옆에는 멀리 축령산 자락과 잣나무 숲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평상이 있다. 유명훈·한서형씨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면 현관으로 나올 것도 없이 바로 안방의 전면 창을 열고 앞마당으로 나와 기다란 데크 모양 벤치에 걸터앉는단다. 앞마당엔 이사 오자마자 심었던 매화나무며 살구나무, 물앵두나무가 벌써 제법 먹을 만한 열매를 달고 있다. 한서형씨는 “아파트에 살면 하루에 한번도 문을 열어보지 않는 방이 있기 마련인데, 이 집에서는 구석구석 한번쯤 앉아보고 한번쯤은 지나가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가, 움직임이 많아진다”고 했다.
존경의 집, 행복의 집으로 붙은 듯 나뉜 두 채의 집에는 모서리 창이 있어 거리를 둘 수도, 서로를 쳐다볼 수도 있다. |
강연을 나가지 않을 때면 남편은 사무실이 있는 왼쪽 집으로 출근한다. 유명훈씨는 반드시 옷까지 갖춰입고 존경의 집으로 간다고 한다. 도서관은 동네의 지식창고이고, 지나가는 사람의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꿈이 담긴 55.35㎡의 작은 공간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긍정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할 궁리를 하고 있는 한서형씨는 도서관 입구에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을 직접 자수로 새긴 쿠션을 놓았다. 4m 높이 큰 책장에는 행복과 긍정적인 마음에 대한 책을 채워넣었다. 위 책장에 꽂힌 책을 보려면 책장 앞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책장 앞엔 창밖을 내려다보며 혼자 있기 좋은 2층 난간이 있다. 임형남·노은주 소장이 신혼부부에게 주는 결혼 축사 같은 공간이다.
집을 나와 뒤편으로 오르는 2층 옥상은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옥상에 옥탑방처럼 작은 손님방 하나만 있지만 아이가 생기거나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지붕만 덮어도 집이 되도록 보통 건물의 높이만큼 옥상 벽을 높였다. 옥상 벽은 밖을 볼 수 있도록 사람 눈높이쯤에 맞춰 뚫려 있다.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이 집에서 작은 계단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 행복의 집 옥상으로 건너가는 길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건축가는 사람이 숨었다가, 머리만 보였다가, 환히 트이는 옥상을 만나는 동선을 사랑하고 이 집에 살고 있는 건축주들은 가끔 이 벽에 스크린을 걸고 옥상 영화관을 열기도 하고 옥상 정원을 만들 궁리를 할 수도 있는 여유를 좋아한다.
여럿의 다른 취향이 한집에서 사이좋게 동거한다. 부인은 “집을 지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남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기왕 지을 거 이렇게 작은 집을 짓지 않는다, 주방이 좁으면 불편해서 못쓴다, 남들은 평상처럼 높은 차실을 거쳐 숨어 있는 화장실로 찾아들어가지 않는다고들 했다. 우리는 우리가 좋으면 상관없다.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고 했다. 남편도 “사람들은 중요한 공간은 넓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넓이는 상관없다. 독립되어야 하고, 오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부부는 집안을 다시 뜯어내야 하는 벽지 대신 페인트로 칠하고 작은 집이지만 독립된 화장실을 만들었다. 남편이 들여놓은 스테인리스 상판의 커다란 알루미늄 식탁과 자작나무로 통일한 붙박이 가구들이 만드는 집안 풍경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캘리그래피를 잘하는 부인이 만들고 수집한 소품으로 채워진 벽과 일본의 오래된 탁자를 들여놓은 차실은 다정하다. 남들 다 있는 티브이, 장롱, 큰 식탁은 없다. 꼭 필요한 가구나 가전만 가지고 산다.
“집을 짓다가 생각을 정리했는데 존경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애정에 대한 농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다.” 임형남 소장의 말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는데, 이 집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다.” 부인 한서형씨의 말이다.